본격적으로 시각견성을 소개하기에 앞서 우선 작품을 감상하는 특별한 방법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.
똑같은 그림도 그 그림을 보는 방법에 따라 우리의 본성을 찾는 “견성의 문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.
지금 소개해드릴 새로운 방식의 그림 감상법을 ‘초탈인식’, 또는 ‘초탈인지’라고 합니다.
마음을 ‘초’월하고 형상을 ‘탈’하여 순수의식의 상태로 형상 너머의 본성을 발견하는 의식전환법이자 그림감상법입니다.
여러분은 그림을 볼 때 뭘 보십니까? 그림의 형상을 보시죠? 당연합니다.
하지만 ‘초탈인지’는 형상 너머를 보는 법입니다.
형상의 바탕인 빈 공간, 형상의 원천인 작가의 영감, 작품을 바라보는 내 내면의 의식마저도 보는 것입니다.
즉 이전에는 미술의 형상만 봤다면 이제는 미술의 바탕과 근원도 알아차리는 겁니다.
우리는 어디에서 나왔습니까?
아버지 어머니로부터? 그럼 그 전에 할아버지 때는 여러분이 어디에 있었습니까? 1천년 전, 1만 년 전에는 어디에 있었습니까?
그냥 없었던 겁니다.
우리는 형상 없음에서 나왔고 형상 없는 빈 공간에 존재하며 형상 없는 빈 공간으로 갑니다.
그것은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.
저 그림은 형상 없음에서 잠시 저라는 매개체를 빌려서 형상을 갖추고 형상화된 것입니다.
무한가능태의 형상을 여읜 창조의 기운이 잠시 저만의 유한한 형상을 통해 유한한 형상을 그려내지만 그 근원은 바로 그 무한성에서 나옵니다.
계절 자체는 형상이 없지만 수 많은 계절의 형상을 통해 그 실체가 드러나듯이, 만물은 형상 너머의 실체가 유한한 형상을 통해 스스로의 무한성을 실현해 나가는 중이며 여러분과 저는 잠시 그 매개체와 체험자이자 실현자가 될 뿐입니다.
그것을 정각한다면 우리는 그림을 보면서 형상만 보는 게 아니라 형상 너머 마저도 볼 수 있습니다
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, 시각견성은 우리의 내면의 상태에 따라 그림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나얼을 찾는 견성의 문이 될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.
이제부터 저와 함께 나얼을 찾아보는 건 어떻겠습니까?
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. 가장 쉬운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.
그림을 볼 때 본성을 찾는 첫 번째 방법은 “마음 끄기”입니다.
시끄럽게 느껴지는 tv 소리를 꺼 버리듯, 사고하고 생각하는 마음 끄기 입니다.
그것을 끄려면 일단 그 마음이 어디 있는지부터 먼저 알아야겠죠?
그럼 한번 마음을 찾아보세요.
찾아보셨습니까?
자, 방금 전 여러분이 “마음이 어디 있지?” 하면서 마음을 찾으려는 바로 그것이 ‘생각하는 마음’ 입니다.
생각하는 마음을 끄기 위해 찾으려면 여러분은 우선 생각하는 마음이 뭐지? 어디 있지? 내가 지금 뭘 찾는 거지? 내가 지금 뭘 해야 되지? 하는데 그것이 바로 생각입니다.
그럼 어떻게 하면 그 생각하는 마음을 놓고 본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?
그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.
우선, 우리의 본성은 “생각하는 마음으로는 절대로 찾을 수 없다”는 걸 아세요.
참사랑은 이유가 없으며 참된 아름다움도 이유가 없습니다. 우리의 본성이 아는 겁니다.
생각하는 마음은 사랑하는 이유, 아름다운 이유는 논리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지언정 그것은 우리가 사랑하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참된 이유가 아닙니다. 모든 본질적인 것에는 이유가 없습니다.
그렇기 때문에 생각으로 찾으려는 시도 자체를 버리세요.
“생각은 원래 본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생각하는 마음 자체를 놓아버리는 것”입니다.
참사랑, 아름다움, 미술, 진리는 생각하는 마음으로는 그 본질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“몰라도 된다, 알 수가 없다, 찾을 수 없다” 하는 것을 아시라는 겁니다.
그렇게 마음은 원래 모른다는 걸 알고 있다고 모르는 게 이해되거나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단 하나 변하는게 있습니다. 마음이 평화로워 집니다.
알아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없으니까 마음이 고요해질 수 있어요. 사고하고 판단하고 생각하려는 충동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예요.
그때 여러분의 의식은 마음을 놓고 고요해집니다. 그 고요함이 바로 여러분의 본래 존재상태입니다.
그것이 본성의 발견입니다.
두 번째 방법은 “숨을 쉬어라” 하는 겁니다.
아니, 내가 지금 숨을 쉬면서 살아 있는데 무슨 말이야? 하시겠지만 제 의미는 의식적으로 하는 호흡입니다.
삶을 숨 쉬고 생명을 숨 쉬라는 것, 현존을 숨 쉬라는 겁니다.
모든 것의 본질은 형상 없음입니다.
우리 모두는 형상 없음에서 나타났고 모든 물질은 형상 없음에서 나타났다가 형상 없음으로 사라집니다.
우리뿐만이 아니라 저 끝없이 무한하고 광활한 온 우주가 바로 비어있음에 담겨 있어요.
그 형상 없음에서 우리가 나타나고 지구가 나타나고 은하계가 나타나고 온 우주가 나타났다가 사라지지만 그 빈 공간은 없어지지 않습니다.
끝없는 무한함과 불멸함, 모든 창조와 소멸과 진화, 전지전능을 담고 있는 비어있음의 그 신비스러움, 성스러움을 숨 쉬라는 것입니다.
왜냐? 그 신비스러움을 숨 쉴 때 여러분은 만물을 담고 있는 성스러움을 숨 쉬는 것이고, 이 신비스러움을 숨 쉬는 것은 온 우주와 하나인 나를 담고 있는 비어있음의 신비를 숨 쉬는 겁니다.
내가 숨 쉬는 것이 나를 존재하게 하는 비어있음이고 내가 숨 쉬는 것이 만물을 존재하게 하고 담고 있는 한얼이다, 그것을 아는 것이 내얼이 한얼임을 아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.
비어있는 한얼 안에 무한불멸한 우주 삼라만상 역시 한얼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고서 그 만물과 하나이며 만물을 담고 있는 경이로움을 숨 쉴 때, 여러분은 이 숨을 통해서 만물과 하나인 이 비어있음의 경이로움을 맛볼 수 있습니다. 그 때 마음이 꺼지고 의식이 맑아지며 잠시나마 한얼과 하나인 여러분의 본래 존재상태인 고요함이 자리합니다.
잠시 그 평화로움과 성스러움을 느낀다 하더라도 몇 초 후, 평생 동안 여러분을 사용해 온 마음이라는 것은 다시 생각을 하고 마치 없었던 일인 양 고요함을 지우겠지만 여러분이 이것을 깨닫고 살아간다면 깨어남으로 가는 큰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.
의식적인 호흡을 통해서 의식을, 나얼을 되찾는 겁니다.
세 번째 방법은 마음을 재부팅하는 것입니다.
호흡을 통해서 마음을 재정립하는 겁니다.
예술을 보기 전에 잠깐 고요함을 느껴 보세요.
숨을 깊고 길게 쉬어보세요.
숨을 들이 마신 다음 그 숨을 끝까지 다 내쉬었을 때 잠깐 숨이 멈추는 순간이 있죠? 그 멈추는 시간에는 생각이 없어요. 잘 느껴 보세요. 신비로워요. 생각이 없어요.
그 생각 없음으로 만물을 바라볼 때 만물이 생명을 되찾습니다.
그 살아있음을 호흡으로 느끼는 것은 바로 그 순간, 생각 없음의 순간이예요.
바로 그 짧지만 고요한 순간, 그 순간을 명심하십시오.
그림을 볼 때도, 그 고요한 의식으로 바라보는 겁니다.
그리고 마지막 방법은 편하게, 하지만 한가지 사실을 기억하고 전념을 다해 그림을 감상하면 됩니다.
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올 수 없는 일기일회의 순간이라는 것입니다.
저 그림은 제 형상 너머에서 나온 작품이고 제 의식에너지가 담겨있는 제 얼과 혼의 자식입니다.
그저 제 작품이 여러분에게 고요함으로 그 실체를 알려줄 수 있도록 여러분은 그저 온 마음을 놓고 바라만 봐 주시면 됩니다.
저 그림이 나온 그 형상 없음 속에서 여러분과 제가 만나게 되길 바랍니다.